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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 기적을 이룬 나라 - 대한민국

노태우 대통령 내외분, 국회의장님, 대법원장님, 제1회 수상자이신 사마란치 위원장님, 내외 귀빈 여러분!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역사 그리고 오늘날 세계역사 속의 이 특수한 시점에서 이 영예로운 상을 본인이 수상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본인을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서울평화상위원회와 김용식 위원장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30여년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은 유능하고 정력적인 국민에게 자유, 격동 그리고 지도력이 주어진다면 어떠한 일도 성취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잘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창의적인 국민만이 성공의 열쇠를 쥐는 정보와 지식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과거에 이룩한 업적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오는 새시대에 무한한 공헌을 할 수 있는 동시에 또한 커다란 혜택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때입니다.

그런 뜻에서 여러분께서 본인에게 이와 같은 영광을 주신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여러분들이 이룩한 업적에 대해 경의와 찬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본인은 이 기회를 통하여 여러분들이 이룩한 세 가지 기적과 앞으로 이룩코자 하는 네 번째의 기적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안보의 기적

한반도 비무장지대처럼 냉전의 긴장이 감도는 곳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적막하고 황량한 지역을 본인은 누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민간인 자격으로 어떤 때는 미국 정부관리로서 방문하였습니다. 분명히 그곳에는 긴장감이 팽팽히 감돌고 있음을 누구나 느낄 수 있으며 지도를 한번만 보거나 혹은 헬리콥터를 잠시 타 보더라도 비무장지대가 얼마나 서울에 근접해 있나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무장지대 저쪽에는 최근까지도 대한민국과는 아무런 유대관계도 갖지 않았던 두 공산 대국인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아온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북한은 군사력 증강에 전력을 경주하여온 것 같이 보입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군사비지출(GNP대비)을 유지하여 왔으며 1950년에는 기습남침을 감행하였던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의 영웅적인 투쟁과 미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이 침략을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이 공산치하에서 고생하지 않고 자주적인 분위기에서 경제와 정치발전을 이룩하여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겠습니까?

우리들은 지난 40여년간 한반도에서 평화를 보아왔습니다. 비록 긴장 속의 평화, 냉전 속의 평화였지만 전쟁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 자신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십시오. 그 대답은 너무나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강력한 전쟁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높은 수준의 군사력과 편대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미국은 탄탄한 저력을 한반도에 유지시키고 있으며 더욱이 미국이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미국의 막강한 전력을 동원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은 한국은 물론 특히 상대측에게 알림으로서 언제나 여러분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레이건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그와 함께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하여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 당시부터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레이건 행정부 출범후 첫 번째 공식손님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음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은 미국 국무장관 재직시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1983년 11월 레이건 대통령 내외를 수행하여 귀국을 방문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때가 바로 네분 국무위원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의 악랄한 랑군 테러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이 지난 후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다행히 화를 면했으나 본인이 항상 존경하던 이범석 전 외무장관을 잃은 것은 큰 슬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한국방문을 반대하였으나 우리는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입장을 확고히 하여 우방을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아래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이 방문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레이건 대통령 도착을 기다려 연도에서 환영해 주었으며 레이건 대통령은 여러분의 국회에서 평화에 대하여 그리고 평화를 원한다면 힘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하여 연설했습니다. 전 세계가 핵무기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그의 희망을 피력했습니다. 또한 그는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취임초기에 약속한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직을 승계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연설의 요지는 레이건 대통령과 본인은 결코 앉아서 위협만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으며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여러분들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으로 침략을 물리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군사력을 구축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지난 40여년간에 걸쳐 이런 강력한 전쟁억제 능력을 배양해 왔으며 이는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는 국민이 공동의 목적을 단합하여 성취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진정한 성취가 없었던들 다른 부분에 바람직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여러분들이 이룩한 안보의 기적에 대하여 축하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기적

한 나라의 힘은 단순히 군사적인 면만으로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군사력은 군사장비를 생산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뿐만 아니라 그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을 유지 향상시킬 수 있는 경제력에 크게 의존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본인은 1940년도 한반도 상황을 재검토해 보았습니다.

당시 북한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화학제품의 약 80%, 금속제품의 90%, 그리고 사실상 전량의 연탄, 무연탄, 선철, 철광석, 납 등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산업발전의 기본자원이 북한에는 풍부했으나 남한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후 시련과 전환의 시기를 맞이하여 온 국민이 전쟁의 참화에서 일어나 자립의 몸부림을 쳤고 미국도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원조를 제공하여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부터 한국의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나라의 발전속도를 앞지르는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최근의 상황을 살펴보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에 비하여 인구가 약 2배에 불과하지만 국민총생산에 있어 북한의 5배에 달하고 경제성장률도 나날이 약화되고 있는 북한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앞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국민총생산액의 4%를 방위비로 충당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그들의 보잘 것 없는 총생산액의 약25%를 국방비에 지출하고 있으니 북한 주민들의 생산상태는 어떠하겠습니까? 본인은 냉전체제하에서 가장 중요한 비교 기준은 결국 상대적인 경제 성취도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남·북한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에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인 동·서독을 비교해 보십시다. 그리고 인간이 속박에서 해방되었을 때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발전은 특별합니다.

네 마리의 호랑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국제적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개인적으로 나는 호랑이를 매우 좋아하며 프린스턴 대학을 다녔을 때 그곳의 마스코트가 호랑이였고, 아직도 나는 대한민국에서의 올림픽 게임의 마스코트 "호돌이"를 우리 집에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 명칭은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높은 경제성장률에 대한 세계의 찬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국에는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떠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한국 경제가 건전하다는 신호입니다. 여러분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가능한 최선의 방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연간 7%의 임플레이율과 과거 5년동안 두배로 올라간 평균 실질임금 상승에도 불구하고 7.5%의 경제성장만을 이룩하였다고 우려하고 있으나, 이 성장률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것으로서 이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경제성취욕구에 대한 열망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었는가. 여기에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인들의 강력한 지도력이 있었고 또 정부가 경제의 자유화를 추구하고, 아이디어와 정력을 가지고 자신의 주도하에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기업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의 여러분의 전략은 국제무역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략의 성패는 세계시장에서의 여러분의 경쟁력에 달렸으며 한국의 기업과 근로자들은 이 극심한 경쟁상황을 잘 헤쳐 나왔습니다.

본인은 여러분들이 미국을 비롯한 여타국가들로부터의 수입을 방해하는 장벽을 제거하도록 설득하는 미국의 노력에 저항 내지는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것이 특정한 산업분야에 위협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은 이미 세계시장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본인이 판단하건대, 한국의 소비자들은 세계시장에 폭넓게 접함으로써 더 이익을 얻게 될 것이고 국내·외의 경쟁력도 공히 막강해 질 것입니다. 한국국민이 구축한 확고한 힘의 바탕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역동적인 경제여건하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이곳이 기업을 할 수 있는 보다 좋은 장소가 되고 자본을 투자하기에 더욱 매력 있는 곳이 되면, 여러분이 과거 수출에서 얻은 이익에 버금가는 수익이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발전을 보고 본인은 경제면에서의 여러분의 성과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기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합당하다고 결론 내리고 싶습니다.

경제과 정치는 동행한다.

본인이 공부했던 경제학이라는 전문분야는 정치경제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본인은 그 동안 정부각료로 미국의 경제정책을 다루는 관리책임자로서, 실제 세계경제에 참여하는 기업인으로서 또 학자로서 경제에 대한 경험을 거듭할수록 경제에 대한 가장 합당한 용어는 역시 1세기 전에 사용되었던 "정치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방경제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구 곳곳을 여행하면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모두 알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말입니다. 따라서 경제발전은 정치적 개방에 대한 요구를 이끌어 냅니다. 동시에 특히 한국경제와 같이 전세계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운용되는 역동적 경제의 관리에는 때로는 규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축과 투자를 통해서 경쟁과 변화를 폭넓게 받아들임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국가에서는, 국민을 설득하고 그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정치력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정치적 업무와 경제적 업무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임기가 만료된 후 권력을 민선에 의하여 당선된 승계자에게 이양하겠다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약은 지키기에 쉬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북으로부터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낮으로 항시 고도의 경계태세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는 어느 나라라도 확고한 규율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막는 것은 국민의 이익과 합치되어야 하고 또 그들의 지지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과 본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공약은 꼭 지켜져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이와 같은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미국의 역할은 아니지만 우방으로서 우리의 견해를 피력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투쟁은 치열하였고 때로는 폭력적인 항의도 수반되었으나 여러분들이 대통령을 민주적 절차로 선출하게 된 현실에 더욱 가까워질수록 폭력적인 시위를 합리화하는 근거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이념은 의견의 차이를 놓고 논쟁과 토의, 그리고 타협을 거친 다음 투표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습니다. 본인이 1987년 봄에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이 점을 지적한 것이 기억나는데, 당시 한국정세는 매우 긴장되고 혼란스러울 때였으며 그때 본인은 자유선거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때 양측의 정치권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이와 같은 본인의 소신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에서의 여러 발전에 대하여 본인보다 훨씬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본인이 볼 때 전환점을 가져온 것은 1987년 6.29선언이었습니다. 1987년 6월 29일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대통령은 선언을 통해 획기적인 민주화 개혁을 발표하게 되었고, 특히 노대통령은 국회를 통한 선출이 아닌 대통령 직접선거를 주창함으로써 대통령 선출의 권한을 국민의 손에 쥐어주게 되자 이 획기적이고 용감한 조치는 정치적 반대자로부터도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988년 2월에 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승계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에 또 하나의 기적이 도태하였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적입니다. 여러분이 성취한 것은 세계적으로 인정되었고, 1988년 10월에 세계 대다수 국가의 초청으로 노태우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한 한국 최초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인정은 결국 1991년 9월에 대한민국이 북한과 더불어 유엔에 정식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된 결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고 단지 문제해결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해결에 계속 노력하고 여러분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은 다시 한번 이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선출하는 시기에 와 있으며 이번이 두 번째이고 세 번, 네 번 그리고 계속하여 이런 제도를 발전시킨다면 자신감도 늘게되고 따라서 민주제도의 기적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형성중인 외교정책

본인은 지난 7월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올림픽대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회는 매우 훌륭하게 치루어졌으며 본인은 그때 바르셀로나의 현지인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루어진 것은 서울올림픽대회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은 덕분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높은 수준의 대회준비를 한 결과 지금까지 어느 대회에서도 보지 못하였던 많은 국가들이 서울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서울올림픽이 개시되기 전에 두 번에 걸쳐 경기장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여러분들이 모든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서울평화상의 목적 또한 88 서울올림픽 정신과 일치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제24회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한 후 그 대회의 성공여부는 한국이 대회를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세계인의 예리한 주시에 잘 부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악랄한 북한의 테러행위를 예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본인은 1987년 11월 29일 아브다비에서 방콕을 경유하여 서울로 향하던 KAL858기의 폭파사건으로 115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얼마 후인 1988년 1월 15일 북한의 한 여자 공작원은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기내에 폭탄을 장치하였음을 자백하였습니다. 또한 본인은 당시 소련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와의 극적 대화가 기억납니다. 그날 오전 우리는 소련의 대회 참가뿐 아니라 대회안전의 중요성에 대하여 논의하고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오찬을 같이 하면서 대화가 주로 서울올림픽대회와 그 안전보장 문제로 모아지자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염려 마십시오. 우리(소련)도 거기에 갑니다. 대회 때는 여하한 테러 행위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소련측으로부터 이와 같은 약속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대회 때는 아무런 안전사고도 없었으며 거기에는 강력한 안전사고 예방장치가 작용하고 있었음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서울올림픽대회는 큰 스포츠 행사일 뿐 아니라 대단한 외교적 성과였습니다. 대한민국이 북한과 대처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이 양대 공산진영으로부터 자극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양대국(소련과 중국)은 서울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고 그들의 정부관리, 체육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국민 역시 텔레비전을 통하여 한국의 발전상을 생생히 보았을 뿐 아니라 북한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쉽게 이를 비교할 수 있있던 것입니다. 한국의 교역량이 북한에 비하여 약 35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어느 쪽이 교역대상국으로 유망한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과 한국 국민은 기술적으로 매우 훌륭하게 대회를 치루었고 소련과의 접촉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샌프란시스코 시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쵸프 당시 소련 대통령과의 첫 회담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 회담에서 놀라운 외교적 돌파구를 뚫어 급기야는 1990년 9월 30일 두 나라 사이에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북한에 큰 충격을 안겨주게 되었습니다.

중화인민공과국 역시 올림픽대회중 한국과의 접촉이 이루어졌고 여러분은 예민한 중국인에 대하여 인내를 가지고 정식 외교수립은 갈망하지 않으나, 원할 경우 수립준비는 되어 있음을 알려주며 능숙하게 중국과 경제관계를 발전시킨 결과, 급기야 노태우 대통령께서는 한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에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또 하나의 외교적 대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외교 나침판상의 접점에 있는 모든 나라들과 국교관계를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북한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 우리가 신중한 협의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을 사용한다면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러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나는 이 지역에서 한국처럼 정치, 경제, 안보의 세분야에서 기적을 이룬 나라가 또 하나 있음을 첨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만입니다. 그 동안 그들은 존경과 찬사를 받을 만한 일을 해왔지만 미국과 같이 한국도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성취하려면 어느 정도 희생을 치루어야 하지만 우리는 다같이 그 희생을 최소화시켜 대만 국민과의 굳건한 유대관계를 유지하여야 할 가지가 있다고 믿는 바입니다.

침략을 저지하려는 확실한 역량의 개발, 강력하고 활기찬 경제발전의 유지,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제도의 발전,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추진을 위한 배경의 구성 등 이 모든 것은 외교라는 장기판 위에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본인이 언급할 바는 아니나 북한과의 대화가 때로는 순조롭게 때로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국민 여러분들은 우리 미국 국민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개발 노력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핵사찰 주장은 매우 지혜로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가까운 장래에 이룩될 네 번째의 기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현재 한반도의 긴장은 현저히 줄어들고 비무장지대는 민족을 갈라놓은 장벽에서 점차적으로 우정과 가족이 만나는 통로로 변할 것입니다. 반드시 다가 올 그날이 오면 창의적이고 이상적인 작업 즉, 민족을 통합시키고 한국에서 이룩한 정치적, 경제적 기적의 과실을 북한 국민에게도 나누어주는 작업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작업을 위하여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인력자원은 한국 내에 얼마든지 있으며 열성적으로 일하는 한국 국민은 능히 이를 감당하리라 믿습니다. 이제는 제4의 기적인 외교적인 기적을 제5의 기적으로 승화시켜 자유롭고 번영된 한반도 가꾸기에 중지를 모을 때라고 봅니다.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대통령 각하, 내외 귀빈 여러분, 이와 같은 크나 큰 상으로 본인에게 영예를 주셨으며 본인은 겸손과 긍지로 이 상을 받겠습니다. 본인의 겸손은 기적의 나라 한국이 이룬 위대한 업적을 보는데서 비롯되고, 본인의 긍지는 이 상을 통해서 여러분이 한국의 기적을 이룩하는데 본인도 동참시켜 주신데서 오는 것입니다. 본인은 여러분이 이룩한 업적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며 이 장대한 업적성취에 본인도 한몫을 담당케 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