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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 전선에서 보낸 UNHCR의 50년"
(서울, 성균관대학교, 2000년 10월 14일)

심 총장님, 성균관대학교 교직원 여러분, 학생 여러분,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우선 저를 초대해 주시고 명예학위 수여의 큰 영광을 주신데 대하여 심 총장님과 성균관대학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한국의 풍부한 문화에서 고등학문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알고 있기에 이를 특히 영예롭게 생각합니다.

또한 저를 올해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은 사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서울평화상의 상금은 UNHCR 창설 50주년을 기념하여 항구적인 유산으로 수립되고 있는 독립적인 난민 교육 신탁 기관으로 전달될 것임을 알려 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상금은 이 중요한 사업계획에 가는 첫 기부금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개인적인 영예는 또한 전세계의 난민들과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우리 난민고등판무관실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기에 이 영광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인도주의 전선에서 보낸 UNHCR의 지난 50년과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우리 판무관실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 그리고 미래 행동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바람은 여러분이 우리가 맡고 있는 임무의 복잡성, 한국과의 관련성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우리 업무에 보탤 수 있는 지원의 중요성을 좀 더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인도주의 행동

난민 이동은 세계가 많은 인도주의의 위기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 초대 난민고등판무관은 70여년 전 유럽이 제1차 세계대전의 파괴, 제국들의 해체, 러시아 혁명의 여파로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을 때 국제연맹이 임명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엔은 철의 장막으로 분단된 유럽에서 이와 유사한 추방의 비극에 직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50년 12월에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창설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난민들은 동유럽의 전체주의 정권으로부터 탈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박해의 희생자로 간주되어 즉각 서방 민주 국가들이 받아들이고 그 사회에 통합되었습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의지와 정치적 목적의 원활한 조화로 망명국에서 난민 보호와 통합을 위한 적절한 법적 구조를 마련하는 UNHCR의 임무는 가벼워졌습니다.

1960년대 초에, 난민 이동은 그 성격이 변화하였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탈식민화 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함에 따라 집단적 대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에는 국가 독립 전쟁의 영향을 피해 탈출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연대감이 존재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알제리아, 앙골라, 기니비사우, 자이레, 잠비아, 짐바브웨 등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난민들을 이웃 국가들은 따뜻하게 받아들였습니다. UNHCR을 통하여 국제적인 원조가 이루어졌으며, 결국 이 난민들의 조국이 독립을 되찾았을 때 UNHCR은 이들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냉전의 경쟁 체제가 양극화, 중무장한 제3세계에서 전개되어 긴장이 고조되고 지역 분쟁 또는 내전으로 이어짐에 따라 이러한 상황은 극적으로 악화되었습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수단, 소말리아, 라이베리아,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인도차이나,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도 전례 없는 대규모의 유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말에 8백만 명 수준에 머물던 난민의 수는 1991년에는 1,70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정치적 박해보다는 정치적 압박과 빈곤, 반복되는 기근, 환경적 파괴 등으로 촉발되는 폭력, 분쟁 그리고 불안정을 피해 탈출합니다. 냉전 기간 중 국가간 관계의 마비는 이러한 분쟁들에 대한 어떠한 해결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백만 명의 난민들은 이러한 불어나는 난민들을 흡수할 여력이 없는 나라들에 설치된 비좁은 난민 캠프에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민들을 그들의 조국으로 송환하거나 망명국에서 그들을 통합시킬 전망도 없는 가운데, 대부분의 경우 UNHCR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들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탈냉전 시대의 과제

1989년 베를린 장벽은 무너져 내리고, 세계 많은 지역에 평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나미비아, 캄보디아, 모잠비크에서 그리고 중앙아메리카에서도 UNHCR은 수백만 명의 난민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또한, 많은 난민들은 다른 나라에서의 정착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은 약 2000명의 베트남 난민들에게 포괄행동계획(Comprehensive Plan of Action)에 따라 그들이 항구적인 거주지를 찾을 때까지 임시 거처를 마련해줌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새로운 그리고 보다 복잡한 양상의 분쟁을 가져왔습니다. 전쟁은 점점 더 한 국가내의 인종적, 사회적, 정치적 파벌들간의 내전으로 변해갔습니다. 발칸 반도 또는 중앙아프리카의 그레이트 레이크 지역에서처럼, 일부 전쟁은 특히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격이 너무 복잡하여 전통적인 분쟁 해소 메커니즘으로는 그 근본 원인을 다룰 수 없었습니다.

분쟁이 더 격심해질수록, 결과되는 인도주의적 비극은 더욱 끔찍해졌습니다. 예를 들면, 보스니아 전쟁의 와중에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4백만 명이 넘는 난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1994년에는 단 4일만에 1백만 명 이상의 르완다 난민들이 자이레 국경을 넘어 들어왔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단 몇 주만에 85만 명의 알바니아 난민들이 코소보에서 속속 빠져 나왔습니다. 알바니아 난민들의 경우, 세르비아가 몇 개월 후 그 지방에서 군대를 철수하자 마찬가지의 속도로 고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 만연하는 분쟁과 난민 위기의 유형입니다. 그리고 제가 언급한 이러한 상황은, 비록 특별한 경우일지 모르지만, 인도주의적 행동만으로는 근본적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머지않아 이 탈냉전 전환기의 혼란으로부터, 보다 효과적인 접근 방법이 신뢰할 수 있는 분쟁 해결 메커니즘의 수립으로 마련되어 보다 큰 안정을 가져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그러한 과정들이 분명히 정치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도주의적 대응은 분쟁의 증상을 치유할 수는 있으나 근본 원인은 다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UNHCR이 나아가야 할 방향

신사 숙녀 여러분,

그러면 여러분은 UNHCR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민 보호의 가치는 무엇이며, UNHCR이 다룰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저는 3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이 겪은 분쟁과 피난의 경험으로 그리고 평화로운 미래에 대한 여러분들의 희망으로, 여러분들은 이러한 문제들과 그 관계를 이해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첫째, 우리는 난민 망명의 중요한 원칙을 존중해야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불안정과 분쟁이 지속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당분간은 더 많은 박해와 인권 침해, 더 많은 전쟁과 민간인에 대한 폭력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등지지 않을 수 없게 되리라는 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탈출 중인 사람들은 보호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망명 제도는 국제사회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난민 보호 수단입니다.

인구 이동의 복잡성으로 망명의 개념과 실제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흔히 경제적 이주자들이 망명에 의지합니다. 그것이 산업 국가에서나 개도국에서나 일자리를 얻고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이해를 흐리게 하여, 진정한 의미의 난민들이 불법 이주자로 간주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들은 일자리를 빼앗고 부당하게 사회복지 혜택을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침입자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분쟁과 박해를 피해 탈출하는 난민들은 합법적인 권리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본국으로 송환되면 투옥되거나 살해당할 것이라는 진정한 두려움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끔찍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 행위를 겪거나 목격하는 것만으로 심각한 마음의 충격을 받는 일이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말 그대로, 이들에게 망명을 부여하는 것이 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망명의 중요성을 확인하였으므로, 이제 우리는 난민 문제를 보다 넓은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냉전체제하에서는, 난민들이 단지 정치적 국경만을 넘은 것이 아니라 사상적 국경까지 넘었을 때, 그들이 조국으로 되돌아가거나 거주하는 국가에 통합될 때까지 그들을 국제적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로 인정하고 취급하는 일이 비교적 간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지구적 상황은 보다 더 복잡합니다. 난민들은 자국 내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만 명의 국내 피난민들과 함께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라이베리아에서는, 시에라리온 난민들이 귀환하는 라이베리아 난민들, 집 잃은 라이베리아인들 그리고 여전히 고향에 남아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동부 콩고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서티모르에서처럼, 난민들이 군대와 민병대와 함께 남겨질 때 비극적 결과가 뒤따릅니다. 죄 없는 민간인들이 폭력의 가해자들에 의하여 협박당하는 서아프리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난민 캠프와 정착촌에 법과 질서가 자리잡도록 하기 위하여, 저는 완벽한 평화 유지와 안전 장치 부재라는 양 극단 사이의 "선택권의 사닥다리"에 의지할 것을 주창해 왔습니다. 이 개념은 여전히 타당한 개념으로 이제 우리는 실천으로 전진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현지의 법 집행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제 민간 감시단 배치 등과 같은, "중간" 선택권을 운용할 수 있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우리 직원들의 안전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 곁에 있어야 하지만 또한 매우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안전도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것은 분쟁으로 분단되고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가 공존의 정신으로 함께 삶을 재건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시급하다는 점입니다. 상호공존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화해를 추구하는 일은 점차 세계 각지에서 난민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UNHCR의 중요한 업무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난민 이동은 분쟁에 의해 유발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분쟁은 그 대부분이 내전 또는 대립적인 종교적 인종적 단체들간의 분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싸움이 끝나고 송환이 가능해지면, 난민들은 그들이 싸웠던 바로 그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스니아에서 르완다, 라이베리아에서 동티모르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대부분의 대규모 귀환자 상황에서 만연하는 하나의 변천 유형입니다. 저는 용어상으로는 모순에 가깝습니다만, UNHCR이 난민 위기가 아니라 귀환자 위기와 싸우고 있는 많은 상황을 여러분께 들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난민 귀환 상황에서의 재건은 단순히 주택과 도로와 공장을 다시 짓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재건하고, 전쟁과 국외 생활로 파괴된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 관계를 복구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물질적 재건이 이루어지더라도 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앙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와 모잠비크의 예에서 보듯이, 이것이 적어도 부분적이나마 이루어진 곳에서는 대립하는 단체들간의 긴장이 완화되었습니다.

난민에게 망명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고, 분쟁과 빈곤과 같은 난민 위기를 초래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이 정치적 행위자들과 발전적 단체들의 임무라면,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대한 역할은 인도주의 단체들 특히 일반 대중 단체들이 담당할 수 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UNHCR이 역사적으로 부딪혀 왔던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 그리고 우리가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장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망명을 보장하고, 난민 이동을 보다 폭넓은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상호 공존과 화해를 도모하는 일은 모두 전지구적인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문제들이 오늘 여기 한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UNHCR은 오는 12월이면 창립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오랜 역사는 결코 경축할 일이 아닙니다. 박해와 분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UNHCR은 여전히 필요한 존재로서 더욱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올 50주년에 우리는 UNHCR이 아닌 난민들, 그들의 용기와 결단,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그들의 능력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을 보호하고 난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입니다. 대한민국은 최근 51차 UNHCR 집행위 회의에서 집행위 회원국으로 가입함으로써 지구적 난민 문제에 대한 새로운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보다 큰 역할을 매우 환영하며, 국제적 난민 보호 체제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우리가 현재 기울이고 있는 노력에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난민과 UNHCR은 각국 정부의 지원뿐만 아니라, 학자, 학생, 사업가 및 일반 대중 등 민간 부문으로부터의 지원도 필요로 합니다. 난민들의 고통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와 공감은 궁극적으로, 세계 전체적으로나 이곳 한국에서나, 우리 업무의 초석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