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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F: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서울, 한양대학교, 1996년 10월 10일)

신사, 숙녀 여러분!

평화에 대한 개념은 90년대 중 전세계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이에 "국경없는 의사회"(MSF)와 같은 인도주의 기구들도 평화에 대한 도전을 극복하는데 기여할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전에 못지 않게 곰곰이 자문하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평화상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서울평화상을 수상하러 이 자리에 선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여기는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주신 영광을 받은 MSF란 과연 어떤 기구인가, 발족후 지금까지 성장해 오는 과정에서 이 기구를 이끈 원칙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몇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곳에서는 개념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판단아래 우리가 서방에서 생각하는 인도적 구호활동이란 어떤 것인가, 그 배경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저는 이 상이 평화상인 만큼 인도적 행동이 세계평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MSF란 어떤 기구인가

MSF는 저의 나라인 프랑스를 비롯하여 서방 전체에서 하나의 큰 사회운동이 되었던 68년 5월 사태이후 70년대초 프랑스에서 탄생했습니다.

순수한 보편적 도덕관에 따라,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자는 구상이 후일 "국경없는 의사회"로 알려진 이 운동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행동을 해야겠다는 의무감에서 출발한 이 인도적 행동은 언론의 도움을 얻어, 우리 인류에게 계속 도전해오고 있는 각종 비극에 대한 세인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데 기여했습니다.

MSF는 올해 탄생 25주년을 맞습니다. 이 기구는 프랑스에서 발족했으나 하나의 국제기구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국경없는" 기구라는 목표에 접근하여 현재는 20여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MSF를 발족시킨 소수의 의사들과 언론인들로부터 오늘날 이 기구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각국의 수많은 구호활동가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게 다사다난했던 지난 25년간은 시대의 조류를 반영하여 어떤 행동지침에 의해서라기보다 이념의 대결, 그리고 이 기구가 관여했던 많은 상이한 분야간의 갈등에 의해 MSF라는 하나의 기구를 탄생시켰습니다.

MSF헌장은 MSF행동원칙, 운영규칙, 행동분야를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MSF의 본질은 부단히 변화하는 각종 요건에 적응하기 위한 취사 선택의 경험적 결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우리는 MSF의 행동원칙으로 인도주의와, 어떠한 대가도 기대함이 없이 희생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고 공평하게 진료를 베푸는 -이 기구의 독립성을 부각시키는 부분- 의료인 윤리를 들고 있습니다.

- 비영리, 비정부 기구로 창설된 MSF는 그 이니셔티브에 있어서나 운영에 있어 독립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새 세계의 무질서"의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 제임즈 로즈노(James Rosenau)는 이들 새로운 행동가들은 "주권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확언하므로써 이들이 인도적 행위를 가장하여 국가이익을 옹호하거나 "국가의 이유"에 복종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부간 기구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MSF는 그 행동분야와 원칙도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인도적 행동은 강력하고 결연한 행동의 자유를 향유하지 않고서는 실천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입니다. 인류의 최대의 고난은 인간활동이 초래한 결과인 경우가 빈번하여 MSF는 구호의 손길을 뻗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반면, 한편으로 일어나고 있는 비극들에 대한 세인의 인식을 재고하고 나아가 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통제하려고까지 시도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재정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냉정한 직시가 필요했습니다.

80년대초 MSF는 언론과 우편을 통한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MSF는 지난 15년간 프랑스, 유럽, 그리고 최근에는 다른 여러 대륙의 개인 기부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방식을 통해 자체 자금조달 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MSF의 현재의 예산은 2억 5천만달러 규모로 이 가운데 절반은 개인 기부자들의 헌금입니다. 잔액은 EU(유럽연합), 난민 고등판무관실과 같은 일부 유엔기구의 사업 지원금, 각국 정부의 기부금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MSF의 목표는 지진 희생자, 무장분쟁으로 갑자기 발생한 대량난민, 전염병, 기타 어떤 이유의 희생자들이건 이들에 대한 구호활동을 언제든지 전개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재정적 독립도 구호활동에 적용할 아이디어, 목표, 수단의 독립성과 그 구호활동의 인도주의적 측면에서의 정당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별로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점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때로 인도적 원조가 본래의 주목표에서 벗어나거나 원조계획이 희생자들에게 오히려 해로울 경우에는 물러설 수도 있어야 합니다. 독립은 또한 건전한 의문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능력이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MSF는 의료차원과 인도주의 차원에서 행동하는 기구이기는 합니다만 어떤 "수임"을 가진 기구는 아니며 또 국제기구들과는 달리 어떤 정부간 합의를 통해 이익을 보는 기구도 아닙니다. MSF는 자체의 이니셔티브로써 운영되며 특정 "규칙들"로써 이 기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 연합성, 연합성은 이 기구의 운영이 매년 열리는 연례회의에서 그 1/3이 투표로써 선출되는 일단의 이사단에 의해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MSF에 동참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구호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은 MSF의 회원이 됩니다. 따라서 회원은 누구나 본 기구의 대소 정책결정에 참가하여 그 목적과 행동방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MSF의 활동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발성"입니다. "자원봉사"는 MSF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사람들을 돕는 목적에 봉사하려는 개인적 자발성을 뜻합니다. 따라서 자원봉사자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도우러 왔다고 선전하는 어떤 조직체의 도구(직업적 고용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MSF의 자원봉사자들도 의사건, 기술자건 운영자건 담당분야의 전문기술 소지자여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그들도 직업인들이기는 합니다만 그들의 인도주의적 자질은 사전에 습득될 수 있는 것도 사후에 습득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자질은 새로운 상황의 압력 하에 부단히 적응하고 또한 개인적 포부를 봉사와 맞바꾸는 능력임을 의미합니다. 인도적 행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어려운 자기조정과 "봉사정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기구인원의 1/3은 초보자들이고 2/3은 유경험자들로서 감독과 조정일을 맡고 있습니다.

- MSF의 국제적 성격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국가적 성격- 은 이 기구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25년전이라는 세월도 국제기구화라는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는데는 충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MSF는 초창기부터 프랑스 밖에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러다가 후일 유럽에 운영본부가 설립되고 최근에는 전세계에 지부가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유럽, 미국, 일본, 홍콩 등지에 약 20개 지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만 MSF운동에 기여하고 있는 한국에도 장차 지부가 설립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MSF의 활동은 세계 50여개국의 모든 국적인을 망라한 1천여명의 구호요원들로써 구현되고 있습니다.

MSF는 하나의 의료기구입니다. 우리의 활동을 효율적일 수 있게 한 결정적 요인은 물자보급과 의료양면의 기술적 개발이었습니다. 물론 인도적 활동에 있어서는 행동하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만 의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무 연관성 없는 쓸모 없는 행동은 희생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한낱 선의의 허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몇 가지의 의료윤리 규정이 우리의 활동방침을 이끌었습니다. "Premium non notcher" 제 일 먼저 남을 해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 이 원칙을 준수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문제점을 철저히 가려내 이에 적절히 대처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이어 주지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의무"가, 바꾸어 말하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최소한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로써 가능한 모든 일을 다해보는 일이 요구됩니다. 이리하여 MSF는 그 동안 과학분야와 국제보건분야에서의 많은 주자들과 긴밀한 실무관계를 수없이 수립해 왔습니다.

인도적 행동의 간략한 배경 소개

물론 MSF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인도적 행동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그 시초와 최근의 변화를 추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적 구호는 "프랑스 의사들"이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의사들은 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유럽의 일부 연구가들은 인도적 행동의 탄생을 18세기 중엽의 계몽주의 철학으로 소급, 추적하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있어온 전통적 자비심의 자리에 "인류는 재해에 시달리도록 자연질서는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철학적으로 거부된데 고무된 다른 형태의 동정심이 들어앉은 것입니다. 이리하여 18세기의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이들도 모든 측면에서 자신들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보와 물리적, 사회적 복지의 개념이 보편화되면서 극빈자들에게 닥친 재해는 이와 싸워 극복해야 할 불의로 간주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형제애"는 모든 인간을 망라하며 또한 어느 한 사람의 해는 모든 사람의 해라는 인도주의적 개념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현대적인 인도적 행동은 아직 탄생하지 못했습니다. 인도적 행동이 탄생한 것은 1859년으로 스위스인 신사 앙리 뒤낭(Henri Dunant)이 Solferino 전장에서 무려 4만명에 달하는 부상자들이 그대로 방치된 채 죽어가는 참혹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싸움터의 부상자들과 무력분쟁의 희생자가 된 일반대중의 구조를 전담할 중립적인 상설 자원봉사단을 구성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완고한 그의 성격과 뛰어난 외교 기술 덕분에 뒤낭은 당시의 군주들을 설득하여 유명한 제네바 협약(1864)에 기재되어 있는, 오늘날 우리가 발견하는 국제인도법의 여러 원칙들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십자사의 전신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자선단체를 특히 미국 내에서 탄생시켰습니다. 이러한 비정부기구들은 종교나 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만 활동의 주무대는 재건중인 전후 유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냉전이 남반구의 일천한 "개발도상국가들"을 두 초강대국간의 각축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의 식민지 독립은 분쟁, 분열해방운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념은 원조에 공평성을 잃게 했으며 주요 인도주의 기구들은 "진보적인" 진영을 두둔하며 긴급 구호분야는 무시하고 개발원조를 택했습니다. 이것이 "제3세계"운동이었습니다. IBO족 본거지에서 무려 1백만명이 살해된 비극적 비아프라 전쟁이 끝나갈 무렵 "국경없는" 운동이 탄생한 것은 이러한 정치와 도덕성간의 틈바구니에서였습니다. 희생자에게는 좋은 희생자와 나쁜 희생자라는 것이 없습니다.

인도적 구호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도적 구호가 참뜻을 지니기 위해서는 이 사람들을 "지켜줄" 용의를 갖추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이들의 운명에 관해 증언하고 나아가 국제협약의 위반을 규탄하는 수단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는 인도적 행동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우리 MSF 단일기구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운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 들어서자 이 새로운 경향은 시청각 통신기술의 대두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TV는 세계와 그 비극을 모든 가정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자 "프랑스 의사들"은 매우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 운동은 수십 개의 기구들을 탄생시켰으며 그들의 노력은 오늘날 MSF와 함께 보람이라는 보상을 받고 있습니다. 그후 인도적 행동은 사사로운 이니셔티브의 범위를 벗어나 국제관계에 있어서 크나큰 한 요인이 되는 듯 싶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코앞에서 인도적 행동이 새로운 형태의 외교로 탈바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행동이 확산되면서 "인도적"이라는 말의 뜻은 모호해져 어떤 경우에는 그 뜻을 모조리 잃고 말장난으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무장한 인도적 작전"이라는 것은 소말리아의 경우와 같이 연대를 과시하는 당당한 행진의 배후에 숨은 강대국 정치였던 경우가 있는가하면 르완다에서의 대학살 시기와 같이 자신들의 약점이나 정치적 음모를 결연한 구호의지로 위장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편 20세기가 끝나가는 지금도 대규모의 학살과 주민전체가 그들의 정부나 지도자들에 의해 인질로 잡히고 있는 현실은 많은 난민, 찬탈, 기근을 계속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한 지금 20세기를 특징지었던 이념의 대결은 사라졌으며 또한 비록 경제적 자유주의가 발전의 유일한 모델로 오늘날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무역의 세계화와 압도적인 "경제 제일주의"는 수천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아넣어 빈곤, 불안정, 불의 속에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인도적 행동과 평화의 모색

세계화로 향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분리주의와 심지어 배타적인 정체성 관련 긴장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폭력을 목격하고 있는 사실은 크나큰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발전은 세계의 여러 곳에서 좌절되었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더욱 큰 희생의 대가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국경없는 세계는 여전히 하나의 장미빛 희망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 운동은 평화나 환경문제에서 목격하듯 점차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인도적 행동은 말할 것도 없이 그 목표를 사회개조나, 발생한 분쟁의 해결에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 목표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훨씬 현실적이고 사심이 없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인도적 구호가 목표로 하는 것은 보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사람들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돕는 일,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또한 차별 없고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희생자들에게 미래를 가질 능력을 회복시켜 줌으로써 인명을 보존하려는데 두고 있습니다.

냉전이 종식되자 무력분쟁은 오히려 증대하여 일반대중이 더욱 자주 전쟁의 볼모, 희생자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이러한 무력분쟁들을 단순한 "먼 곳에서의 하찮은 전쟁"으로 일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전쟁들은 그것이 우리들의 사회에 미칠 반향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지키고 있는 가치관과 일상생활에 파장을 미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70년대의 평화운동과는 달리 인도적 행동은 희생자들의 존엄성과 인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그런 만큼 인도적 행동은 저항, 무질서, 반란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은 그것이 자신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재산을 보존하며 사회적 진보와, 탄압의 종식을 바라는 일반국민이 관련된 만큼 평화의 단순한 부재로 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로운 차원의 평화에 대한 위협이 급속히 대두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가가 주민들에게 베풀어 왔던 보호가 붕괴되므로써 조성되고 있는 위협을 두고 이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인도적 행동가들은 때로 평화에의 자신들의 기여에 긍지를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들은 전쟁을 부채질하지 않도록 명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현대의 많은 분쟁들은 그 재원을 구호원조를 포함, 암거래, 협박, 국민으로부터의 약탈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의 라이베리아에서 보듯 인도적 기구들이 이 나라의 유일한 외부재원은 아니라 하더라도 주요 외부재원이 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인도적 원조가 오히려 분쟁을 영구화시키는 한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인도적 기구들은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원조가 서로 싸우는 파벌들의 사리에 전용되지 않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구호원조와 전쟁간의 이러한 모순은 이제는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한 인도적 행동가들의 명석함이 요구되는 점이기도 합니다만 인도적 행동가들은 이러한 모순의 부작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되 이 모순을 완전히 억압하려 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시도는 원조 자체를 억압하는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입니다.)

사사로운 인도적 행동이 무력분쟁을 해결하는데 주요요인이 될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만 지난 몇 년 사이 이것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전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추구하고 분쟁을 예방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를 자문할 수 있게 해줍니다.

- 현장에 가 있음으로써 구호요원들은 화해와 평화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의 전제조건인 최소한도의 존엄성과 정의를 회복하므로써 나름대로의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 일반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난의 실태를 관찰하고 증언하고 정보를 수집하므로써 인도적 기구들은 세인의 인식을 제고시키고 국제사회를 동참시키는 기여를 합니다.

- 인도적 행동은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또 고작해야 용인되는 활동이어서 그 과정에서의 접촉을 통해 전쟁당사자간의 교량역할을 하므로써 간접적 기여를 합니다.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난에 대해 세인의 인식을 높이고 또한 접촉이 단절된 곳에 접촉을 회복하려는 것은 "인도적인 공간", 대화와 조사를 위한 공간, 자유와 창의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에서입니다. 평화에 대한 우리의 최대공헌은 어쩌면 바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 론

인도적 행동이 성공한데에는 현재의 "인도적 대대"를 구성하고 있는 10여개의 기구들의 창의성과 역동력에 힘입은 바 큽니다. 그러나 좀더 인간미가 풍부한 세계를, 보다 공정하고 전 인류에 미치는 진보를 이룩할 수 있는 안전한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하나의 일치된 국제적인 정치적 의지가 중심무대의 창설을 계속 요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의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바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한국은 국토통일이라는 큰 난관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중대한 이 범국민적 도전도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 최우선 과제에 얽매이지 않고 차원이 전혀 다른 평화의 대의를 적극적으로 또한 관대하게 밀어주시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점차 흔하게 보게된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는 일을 뒷받침해야 할 화급한 필요성이라는 차원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내일도 과연 여러분의 이웃과 계속 평화로울 수 있을지 확신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단한 우려 속에서도 여러분은 세계평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시는 여유를 보이고 계십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받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우리들 "국경없는 의사들"만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같은 기대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이 상을 공평히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저는 또한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자 합니다. 세계에는 오늘날 두 개의 크나큰 범지구적 도전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굶주림과 깊은 도덕적 참상이 어떤 것인가를 아직도 잘 알고 있는,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람들의 장기적 도전이고 또 하나는 특히 새로운 인종분규로 인해 사망 위험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어야 할 보다 시급한 도전이 그것입니다.

한국도 동아시아의 다른 신생공업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개발이라는 첫 도전을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이 찬란한 성공도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충분하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인도적 행동이라는 도전에도 발벗고 나섰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고 또 세계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분단국에서 주시는 서울평화상이라는 점에서 저는 하나의 매우 고무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얻었습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를 대표하여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급변하는 세계의 한 부분입니다. 이 세계는 많은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과 많은 국민들이 여전해 박탈, 고립, 불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난과 폭력 속에 혼자 자라나는 세계 대도시의 거리 어린이들, 전쟁과 파괴로부터 피난하는 수백만 난민들, 탄압의 무언의 희생자들, 세계빈곤국들 특히 아프리카 빈곤국들에서 창궐하는 전염병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이들 모두에게 이 상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