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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곤 없는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내외 귀빈, 서울평화상위원회 위원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저에게 큰 영예를 주셔서 감동이 복 받칩니다. 또한 저희들이 해온 일을 인정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권위있는 ‘서울평화상’의 수상은 제에게는 영예로운 훈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상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딧’이 극빈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빈곤을 극복하는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는데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적으로 널리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금년은 그라민은행이 설립된 지 30년 되는 해입니다. 저는 1976년 당시 제가 기르치고 있던 대학 옆의 조그마한 마을 주민 42명에게 미화 27달러를 빌려주었을 때 이것이 새로운 금융기법의 시작이며, 전세계 모든 나라에 전파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세계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그때까지 은행문이 굳게 닫혀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라민은행은 금융업을 담보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 퇴치를 위해 필요한 요소들이 모두 그들 자신들에게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다른 한편으로는 전세계인의 복리(福利) 증진에 공헌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렇다면 왜 지구상의 10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일생동안 비참하고 존엄성이 훼손된 삶 속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육체적 생존을 위해 매 순간을 식량을 구하는데 급급하고 있을까요?

빈곤은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우리는 빈곤이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빈곤은 우리가 세계를 위해 고안해 온 경제?사회적 제도에 의해 생겨나고 고착화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발전시켜 온 제도와 관념들이 빈곤을 조장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고수해 왔던 고정관념으로 인해 현상들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회제도와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잘못된 논거와 이론틀이 만들어 낸 정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빈곤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빈곤의 근원이 하부계층의 능력 부족이라기보다는 상부계층의 실패에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걸인들도 기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신용대출은 인권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저희는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조치를 격려하고 지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이크로 크레딧’을 실시한다고 해서 다른 지원책들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면 안 됩니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그러한 지원책들의 유용성을 높여주는 조치입니다.

그라민은행은 유일하게 걸인들에게 신용대출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걸인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구걸을 할 때 약간의 상품을 팔아보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구걸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물건을 팔아 돈을 벌게 된다면 그들은 구걸하는 것을 멈추고 물건 판매에 집중할 것입니다. 이미 8만명 이상의 걸인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걸인들에게는 통상 1인당 미화 10달러씩을 대출해 주고 있습니다.

만약 걸인들에게 금융지원의 혜택이 주어져 상당수의 걸인들이 구걸을 중단한다면, 그것은 그들도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회공헌기업(social business enterprises)의 설립

마이크로 크레딧이 효과적이었던 주요한 이유는 사회적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하여 시장원리들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기업행위를 통해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하는 새로운 기업형태로서 사회공헌기업(Social Business Enterprises, SBEs)의 설립을 주창해 왔습니다.

우리는 기업세계가 우리들의 주변문제들을 악화시키기 보다는 인간적인 사회건설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기업세계의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들이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면서 신이 나듯이 기업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신명이 날 것입니다. 두 종류의 기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두 종류의 기업이 병존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면 됩니다. 두 종류의 기업은 수익창출 기업, 즉 이윤극대화 기업과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사회공헌기업입니다.

사회공헌기업은 시장 기능을 이용하여 사회, 보건, 그리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손실을 내지 않으면서 배당도 하지 않는 새로운 기업 형태입니다. 사회공헌기업은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업입니다. 이들 기업의 성공은 투자에 대한 금전적 수익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대한 영향력에 의해 측정됩니다. 우리는 사회공헌기업이 시장에서도 그 존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이윤극대화 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와 병행하여 제도적 정책적 지원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가지 제도는 사회공헌기업가들과 사회투자자들을 서로 접촉하게 해주고, 또 이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기업을 위한 투자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공헌 주식시장’의 신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예를 들면 사회공헌벤처자금, 사회공헌 평가기관, 사회공헌 기업 경영을 위한 MBA 교육, 사회공헌기업들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는 방법 창안 등과 같은 일들을 새롭게 추진해야 합니다.

그라민 금융방식은 담보의 제약을 제거함으로써 금융세계를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기업들에게 새로운 대안 목적을 제시한다면 기업세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변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선행을 실천하는 것”만을 전적인 목표로 하는 기업을 설립하게 하는 것도 새로운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돈을 버는 기업만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기업가들에게 어떤 종류의 기업을 운영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왜 그들에게 한 가지 종류의 기업만을 강요해야 합니까?

경제가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팽창하고, 개인의 부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규모에 이르고 있고, 기술혁신들은 이러한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세계화는 취약한 경제와 빈곤한 사람들을 경제지도로부터 퇴출시키려고 위협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사회공헌기업의 설립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올바른 환경을 조성한다면 사회공헌기업들은 상당한 수준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시장을 과거에 보지 못했던 더욱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회 문제들과 싸우는 신나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빈곤 없는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만약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빈곤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단 한 명의 가난한 사람도 없는 세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우리는 빈곤박물관에서만 빈곤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빈곤박물관을 견학하면서 인간들이 한때 경험했던 비참함과 존엄성의 상실을 보고 경악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그렇게 오랜 기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살아가도록 방치한 그들의 선조를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결론

그라민은행의 경험은 저에게 인간의 창조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주었습니다. 또한 인간은 기아와 빈곤의 비참함에 시달리도록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외면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실제 개발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잠재력의 개발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결코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는 세상을 만듭시다.

저에게 수상의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영예를 주시는 것은 자신들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자녀들 그리고 앞으로 그러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영예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