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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의 유엔의 역할"
(서울, 1998년 10월 23일)

이상옥 유엔한국협회 회장님, 내외귀빈,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저녁 1998년도 유엔의 날 전야에 유엔의 강력하고 변함없는 친구인 여러분들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본인은 세계화 시대에 유엔이 없어서는 안될 범세계적 기구로 계속 남아있고 또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 마음 든든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지금은 많은 도전과 기회가 공존하고, 우리 이전세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방식으로 세계가 통합되어 가는 그런 시대입니다. 또한 한 세대만에 이루었던 전례 없던 번영이 갑자기 형용할 수 없는 속도로 사라져 가는 것을 목도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본인은 한국경제가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특히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축이 급감하고 빈곤퇴치를 위해 수십년간에 걸쳐 어렵게 이루어낸 성과가 물거품이 될 위험에 봉착하였으며, 많은 노동자들이 제때에 봉급을 받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직장을 잃어버리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본인은 여러분들이 한국은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번영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번 위기에 결연히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범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금번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 위기를 좋은 교훈으로 삼아 미래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대응방안이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를 다시 번영의 길로 이끌어줄 안내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본인의 친구인 Jim Wolfensohn 세계은행 총재가 "또 다른 위기", 즉 재정위기에 따른 "인간의 위기(the human crisis)"라고 명명한 이 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요?

Wolfensohn 총재는 다음 3가지를 축(軸)으로 한 대응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첫째, 미래의 위기에 대한 우리의 예방능력을 향상시키고, 둘째 이러한 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안을 개선해 나가며, 셋째, 안전망(safety nets)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축(軸)은 굳건한 정치적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하며, 자유와 번영을 위해 어려운 정치적 선택을 하겠다는 정치적 용기에 기초해야 합니다.

한국인은 그런 선택을 할 용기가 있고, 정치제도와 자유로운 제도의 확립이 경제번영의 지속을 위한 초석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도자로 선출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김대통령은 "시장 메커니즘과 경쟁을 존중하는 민주경제질서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김대통령은 선정(good governance),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간 균형발전의 필요성, "제2의 건국"의 본질적 구성요소로서 법치와 계약법의 중요성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민주적 통치의 기반 위에 둠으로써 한국인이 성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여타 국가들에게도 모델이 될 수 있는 점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동료 여러분,

오늘날 세계곳곳에서 세계화가 급속히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14개월전 태국의 통화위기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가 지금은 경제적 지불불능과 정치적 마비현상을 세계곳곳으로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세계화는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번영의 친구가 아니라 적으로, 개발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한정된 국가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각국에게 안전망을 확충토록 촉구하는 압박수단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가치 자체가 의문시되는 시기를 맞아 우리는 지속적이고 성공적인 개발을 유지해 가는데 있어 정치와 선정의 역할을 신중히 고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전에 전세계 모든 지역에서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고,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속적인 번영은 합법적인 정치에 기초한다는 근본인식과 함께 사회정의와 빈곤에 미치는 시장의 비용을 최소화시키면서 그 혜택은 극대화시켜 나가야 하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모든 곳에서 규제 중심의 체제가 개선되어야 하고, 가장 빈곤하고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확고하고 지속적인 안전망이 개발되어야 하며,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이 증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난 90년대 초반을 냉전종식 이후 우리가 한때 가졌던 우리의 정치적 오만을 잔인할 정도로 우롱한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의 인종학살로 얼룩진 야만스러운 전쟁의 시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90년대 후반을 글로벌리즘의 전성기 이후 우리의 정치적 오만을 마찬가지로 우롱한 정치·경제적 고통의 시기로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머지않아 좋은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이는 어떠한 평화와 번영도 정당하고 책임질 줄 아는 정치에 의존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이는 또한 시장이 아무리 중요하다 할지라도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낼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상이한 이해관계와 기대들이 있으며, 이러한 차이점들은 정치를 통해서만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와 정치발전이 세계화의 전성시기 중에는 은근히 무시되어 왔습니다. 상당한 정도의 경제 성장률이, 이러한 성장이 없었더라면 이의를 야기시켰을 정치적 행위들을 정당화시켜 왔습니다.

기본적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부인하는 독재정권은 그 국민을 수세기에 걸친 빈곤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도록 한데서 그 정당성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치 - 모든 형태의 정치가 아니라, 선정(善政), 자유, 평등 그리고 사회정의와 같은 정치는 상실되었습니다.

법치에 기반을 둔 사회발전, 정당하고 책임질 줄 알며 부패하지 않은 정부의 수립, 인권과 소수민족의 권리에 대한 존중, 표현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다원화된 민주사회의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들이 너무도 많이 무시되어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평등과 자유라는 기본원칙이 정치세계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경제성장에 중요한 조건으로서 신장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기본원칙들은 외면 받을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민주정치의 벽돌 하나 하나를 쌓아 번영을 이루어 내겠다는 여러분의 의지가 반드시 성취되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비단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성공사례를 통해 자유를 누리면서 동시에 번영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갈구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독재정권하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 자들과 맞서 이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이는 정치적으로 반드시 싸워 승리해야하는 전투인 것입니다. 자유 그 자체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며, 그 정신은 발전을 위해 너무도 중요한 것이기에 대한민국이건 그 어느 곳에서건 번영을 위한 투쟁 속에 흥정의 대상이 되어 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개방, 투명성 그리고 선정(善政)의 정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수준, 원칙적인 수준과 사회적 절망 및 불안정에 대한 일정한 경제적 보장을 제공할 수 있는 실제적인 수준 모두에서 비판가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합니다.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경제통합은 강력한 힘만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특히 어려운 시기에 정치적으로 엄정히 드러나고 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중론자들과 보호주의론자들이 고립과 개방, 특정성과 보편성, 상상 속의 과거와 번영된 미래 사이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그들이 승리를 거둬서는 안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세계화가 성공적인 것이 되려면 빈자와 부자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성공적인 세계화는 부 뿐만 아니라 권리까지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공적인 세계화는 경제적 번영과 원활한 의사교환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와 형평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공적인 세계화는 자본 그 자체만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최빈자들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것이기도 해야 합니다.

정치적 자유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발전의 산파로서 받아들여져야 하며 정치적 인본적 권리는 경제적 진보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것은 엄청난 주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수년후 세계화라는 것이 정치에 우선하여 무역논리가 지배하는, 인권에 우선하여 부가 지배하는 상황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충족되어야 하는 주문입니다. 보편적 정통성과 영역을 갖고 있는 유일한 국제조직으로서 유엔은 세계화의 공정하고 지속적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조력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것은 관심이라기보다 의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목적달성을 보장할 도깨비 방망이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도전에 맞서는 우리의 공동노력을 통해 손쉽게 어떤 성과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한 나라나 조직이 세계화의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범세계적이며 단합된 노력이 요청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항구적인 정치제도의 창출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조치는 많은 국가경제가 빠르게 붕괴되는 근원에 대한 명확하고 균형된 이해를 바탕으로 취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붕괴는 어느 정도는 건전치 못한 정책, 부패, 편협한 정치로 특징 지울 수 있는 국가경제의 결함과 실패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외부세력에 의해 추구되는 무책임한 대출관행과 공격적인 투자정책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의 개선 없이는 항구적인 경제성장의 토대를 창출해내기 위한 정치적인 개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측면이 다 중요하며, 모든 부문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인은 정치야말로 세계화가 야기하는 각종 어려움의 근본원인이자 문제해결에 있어 핵심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해결책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세계화의 전성시기에는 모든 국가는 번영이 확보되면 그 이후 스스로의 성숙에 의해서 다자간 기구에 관심을 돌릴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오늘날 본인은 모든 국가가 자국들의 필요에 의해서 그와 같은 다자간 기구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유엔과 그 자매기구인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세계화를 가로막고 있는 난관들이 국제협력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고 오히려 그러한 협력에 새로운 생명력과 기대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 작업을 해나가야 합니다. 발전을 추구함에 있어 국가차원에서 시민사회의 중요성과 민주제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 한 방법이며, 다자주의의 효과성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두 번째 방법입니다. 우리는 공동노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최빈자와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해 진정한 보호를 보장해주는 동시에 자유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내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대한민국과 유엔의 초창기에는 경제적인 문제가 궁극적으로 정치, 안보적 문제라고 인식하였습니다. 또한 번영과 평화는 무역이나 기술진보의 당연한 귀결이 아니라 정치적 산물이라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과거의 교훈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가 진정하고 항구적이며 공정한 발전의 조건이며 세계화의 혜택은 핵심부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또한 자유롭고 정통성 있는 민주정치 없이는 아무리 번영이 이루어지더라도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세계화 시대에도 항구적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